KBO리그가 더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피치클락 제도가 개막과 동시에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시범적으로 운영된 개막 시리즈에서만 총 96건의 피치클락 위반이 발생했으며, 이 중 투수가 62건, 타자가 33건, 포수가 1건을 기록했다. 예상대로 타자보다는 투수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그러나 팀별 위반 횟수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롯데는 전체 위반 사례의 3분의 1에 가까운 30건을 기록한 반면, KT는 단 한 차례의 위반도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두 팀 모두 시범경기에서 피치클락 도입에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팀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운영 결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지금은 정식 시행 전 적응을 위한 ‘시범 운영’ 기간이기에 위반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KBO는 본래 올 시즌 후반기에 피치클락을 정식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시즌 중 혼란을 우려해 도입 시점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위반 시 즉각적인 벌칙 대신, 플레이 종료 후 사후 경고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선수들이 새로운 규칙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러한 ‘유예’가 무기한 면제권이 되어선 안 된다. 지난해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인 만큼, 이미 대부분의 구단은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피치클락 적응에 힘써왔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피치클락 도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보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막 시리즈 이틀 간 9이닝 기준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6분으로, 지난해의 3시간 12분보다 짧아졌다. 연장전을 포함하더라도 평균 3시간 9분으로 단축 효과는 분명했다. 투수와 타자의 템포가 빨라지며 전반적인 경기 진행 속도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팬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지루한 경기 대신 빠르고 몰입도 높은 경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팀에서 반복적으로 규정을 어기고, 이를 사실상 무시하는 분위기가 퍼진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다.
피치클락을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성실하게 규정을 지키는 구단만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원칙처럼, 불성실한 팀들이 전체 제도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KBO 차원의 보다 강력한 대응과 추가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현재 위반 횟수가 한 자릿수에 그친 6개 구단은 새로운 규정에 맞춰 스스로 정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식 도입 전부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부작용 없이 제도가 안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규정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준비도 하지 않는 팀들의 태도는 리그 전체의 질서를 흐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피치클락은 단순한 규칙이 아닌, 팬들에게 보다 나은 야구를 보여주기 위한 리그 차원의 의지이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구단이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때다.